이 글은 칼빈 신학대학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한 안토니 A. 호에케마(Anthony A. Hoekema)가 [무천년설]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관한 "해석법의 문제"를 다룬 글이다.[Anthony A. Hoekema, "Amillennialism,"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7). Edited by Robert G. Clouse. pp. 155-187.]
1. 계시록의 해석<br>2. 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br>3. 구약 예언의 해석<br>4. 무천년설 종말론에 관한 간단한 요약<br>5. 무천년설 종말론의 몇 가지 암시들<br>
천년왕국설에 관한 무천년설의 이해에 대한 본인의 진술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요한 계시록의 해석법, 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 지상 천년왕국을 예언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는 구약성경에서의 두 구절, 무천년설의 종말론에 대한 간단한 설명, 무천년설의 종말론에 대한 몇 가지 암시들에 대해 요약 진술을 다루고자 한다.
용어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무천년설이란 말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천년설 주창자들이 어떤 천년왕국설도 믿지 않는다거나 또는 천년왕국 통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계시록 20장의 첫 여섯 절의 말씀을 간단히 무시 해버리고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들 어느 진술도 사실이 아니다. 비록 무천년설 주창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오는 문자적 천년 지상통치를 받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천년설이란 용어는 이 들 학자들의 견해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제이 E. 아담스(Jay E. Adams) 교수는 무천년설이란 말은 현실화된 천년설이란 표현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무천년설 주창자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설은 미래에 있을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 실현되고 있는 일로 믿기 때문에, 현실화된 천년설은 확실히 무천년설의 주장을 무천년설 이란 말보다는 더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화된 천년설이란 표현은 세 음절로 된 단순 접두사로 대치한 시원찮은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인은 무천년설이란 말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더 짧고, 더 잘 알려진 말인 무천년설이란 말을 계속해서 사용코자 한다.
==1. 계시록의 해석==
왕국설에 대한 무천년설의 견해가 가진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계시록의 해석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서, 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그 주변 시기에 일어날 사건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배타적으로 미래적인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가정하자. 계시록 20장에서 지시된 것이 계시록 19장에서 기술된 것을 필연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또 가정 해보자. 그러면 결과적으로 20장 4절에 묘사된 천년왕국 통치가 19장 11절에 기술된 그리스도의 재림 후 따라야 한다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계시록 20장 1~6절이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시작되는 전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일어날 사건의 기술로 본다면, 지금 막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계시록 20장의 왕국설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시록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석 방법에 관해 먼저 언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마지막 부분은 사단에게 임한 심판과 그의 최후의 운명을 기술하고 있다. 사단이 그리스도의 최고의 적수이므로 그의 운명이 최후에 기술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2. 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
우리는 지금 천년설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성경구절인 계시록 20장 1~6절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먼저 이들 구절들은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1~3절의 말씀은 사단의 묶임을 기술하고 있고, 4~6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혼들의 천년 통치를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 20장 1~6절의 무천년설의 해석이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이들 본문은 우선적으로 유대인의 왕국으로 세워질 그리스도의지상 통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이 천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다스리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날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다스린다.
==3. 구약 예언의 해석==
전천년설 주창자들과 무천년설 주창자들 사이에 채택된 성경해석방법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전천년설 주창자들 특히 시대구분론적 전천년설 주창자들은 소위 구약 예언의 "문자적" 해석이라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시대구분론적 전천년설의 대표적인 인물인 존 F. 발부르드(John F. Walvoord)는 이 해석학파의 해석학적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실제로 25절에는 이사야서 11장에서 기록된 최종적인 상태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 생각나게 하는 동물세계에 대한 기술이 있다. 25절 하반 절은 11장 9절의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 대한 반복된 언급에 지나지 않는다. 새 땅에 대한 정 말 아름다운 하나의 기술이다. 독자는 단지 그가 먼저 지상 천년왕국이란 색안경을 쓰고서야 비로소 여기서 지상 천년왕국을 보게될 것이다.
==4. 무천년설 종말론에 관한 간단한 요약==
무천년설 종말론에 대한 보편적인 비판은 합의되지 않은 종말론적 체계를 반박하고 반대하는데 최우선적으로 힘을 소진하고 있고, 너무 부정적이라는데 있다. 이 비판이 옳고 그른 것의 문제를 떠나서 무천년설 신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적극적 긍정을 간단히 스케치함으로써 일부 무천년설 의 종말론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이 시점에서 제거하고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설에 대한 일정한 해석으로서만이 아니라 무천년설의 종말론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천년설 주창자들은 무천년설 주창자들이 미래의 왕국을 단순히 영적이고, 지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가르친다고 비판하는데, 무천년설의 견해를 올바로 알고 하는 소리로 볼 수 없다. 무천년설 주창자들은 약속의 땅이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소유가 될 것과, 이리가 어린양과 살 것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 지상에 충만할 것을 예언하는 구약성경의 예언은 단지 일 천년 기간동안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믿기로는 이 해석이 그들의 의미를 최종적인 상태 전에 나타날 지상 천년왕국의 기술로 제한하는 것보다는 그들 예언들에 대한 더 부유하고, 더 넓고, 더 많은 관련성 있는 이해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5. 무천년설 종말론의 몇 가지 암시들==
결론으로 신학적 이해에 대한 무천년설 종말론의 몇 가지 암시들은 무엇들인가? 네 가지 것으로 설명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