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의 경제성장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일본이 현재 경제적 위치가 된 것은, 이전의 경제적 능력도, 메이지 유신도 아니라, 한국전쟁 후 일본을 거하게 밀어준 미국의 푸쉬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1940년대에만 해도, GNP가 독일, 에스파냐, 이탈리아만도 못 했습니다. 일본은 1970년에 이탈리아, 1985년에 서독을 GNP로 추월하게 되죠.
이렇게 된 데에서는 미국의 정책이 한국전쟁 이후, 마샬 플랜마냥 일본의 산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하였고, 미국은 1960년대에 일본 중심으로 한국과 대만 쪽의 산업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GATT에 가입하고, 미국 시장에 특권적 접근이 가능했고, 베트남전에서처럼 미국의 해외 군사지출에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미국은 대일 무역 흑자였는데, 1970년 대가 지나가면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로 돌아섭니다.
일본은 이런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탈중심적 다층의 하청을 통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처음에는 일본 국내에서 대형, 중형, 소형 기업들의 하청이 이뤄지다가, 이것이 동아시아 각 지역으로 파급됩니다. 삼성도 이런 하청망 가운데 있었고, 노무라 증권 사람이 중역 회의에 있었다고 하죠. 이 과정은 2000년대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까지 파급됩니다.
이런 과정은 결국 미국의 손으로 이뤄진 경제적 위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만 이 가운데 일본이 한 것은 하청을 통해, 거대한 이윤을 낳을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일본 스스로도 이를 통제할 수는 없었고, 중국의 거대한 산업화와 동아시아의 또 다른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2차 세계대전 전의 산업 체계와 연관시키는 것, 더 나아가 메이지 유신 전의 일본의 경제적 조건과 결부시킨 것은, 사실 현대 일본 사학자들의 거한 ‘일뽕’의 산물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국뽕’의 관점으로 보는 것도 위험하지만, 더 큰 위협은 ‘일뽕’으로 만든 역사관에 있고, 먼저 이것을 피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를 이상한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