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마태복음 2:1~1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정작 유대의 사람들은 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를 찾았던 것은 먼 동방에서 온 박사(magi)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구약에서는 메시아의 별칭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이방인들이었지만, 구원을 갈망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던 메시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이에 따라 메시아를 찾았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구원과 이방인은 서로 관계가 없었다고 간주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를 듣고 소란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소식을 듣고서야, 헤롯 왕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후, 그의 행동을 볼 때, 그가 예수님을 자신을 위협할 경쟁자로 여겼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들은 그저 놀라기만 했을 분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론 질투로 제거하려 들거나, 그의 소식에도 놀랄 뿐 그를 영접하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인물을 남겨두시고, 그 분을 찾도록 만나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참으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며,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악한 왕으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왕은 우리에게도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이익과 욕구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왕 중의 왕, 참된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목자로서 다스리십니다. 그는 참된 목자시라, 자기 목숨을 양을 위해 내어주십니다. 세상에 이런 왕이 없습니다.

이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공의와 자비가 서로 입을 맞추는 곳이며, 생명이 충만합니다. 아직 이 나라는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의하고 악한 세상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많은 이들이 복음을 통해,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시대가 너무나 어둡고, 불의가 판을 치며, 악인의 흥함에 마음의 고통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가운데 목자로서, 선한 왕으로서 임하신 예수님을 원합니다. 다만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마누엘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마태복음 1장은 이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예수,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세상의 비극은 하나님과 멀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기에, 우리를 죄를 짓고, 속고 속이며, 신음하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권력자에 빌붙은 사이비 종교인이 10조나 모아 뭇 사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제대로 악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 이를 보면, 우리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난 것이 심각한 문제인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성자 예수님이 임하셨고, 또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확실히 하시고자, 능력으로 부활하사 소망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분의 의로우신 대속의 죽으심에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또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삶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주께서 태어나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지금 저는 통장에 예금 한 푼 없고, 빚만 지고 있습니다. 제 삶은 온통 무기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 죄인을 죄악에서 사망에서 구원하실 것 또한 믿습니다. 주님, 이 죄인이 자꾸만 음란과 정욕을 사랑하고, 주의 이 놀라우신 구원을 가까이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죄악을 깊이 회개합니다. 또 주께서 주신 위대한 형상을 잊고 자꾸만 무기력함과 절망 가운데 침전함을 또한 깊이 회개합니다. 주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도와주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1:15~23(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만물 중 하나가 아니시며, 천사도 포함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우리는 지극히 약합니다. 세상에서도 그렇게 보잘 것 없지만, 죄에 대해서도 강하다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러니 복음의 소망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문제는 제가 이 복음의 소망에 굳게 서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저는 근래 취업 앞에 두려워하며 빌빌대고 있습니다. 지난 조교 시절 후반부에 제가 무너진 것 때문에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이, 세상과 마귀보다 더 강하시고, 나의 죄악보다 더 한량없는 대속의 은혜를 베푸심을 믿습니다. 주님, 이 죄인을 일으켜 세워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멸망하지 않고, 나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바울의 감사와 기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

골로새서 1:1~14(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 사랑, 소망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복음은 이처럼 성도들에게 믿음과 사랑, 소망을 가져오며, 선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믿음, 사랑, 소망이 없다면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됩니다.

골로새 성도들을 섬기던 에바브라는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골로새 성도들의 사랑을 전하였고, 이에 감동한 사도 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얼굴도 잘 모르는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골로새 성도들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며, 늘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오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자라나며, 하나님의 모든 능력으로 능하며, 기쁨으로 인내하는 데 이르며,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감사 받으셔야 했는데, 이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더욱 성장해야 함을 배웁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행한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도 어영부영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삶을 향해 오늘도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나태한 자를 깨우시고,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가 얼마나 크고도 무궁한 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장래의 은혜를 바라며,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정의,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이브리험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

사실 민주주의란 게, 서구 사상의 이론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게 아니라, 실천적 흐름에서 형성되고 탄생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뭐냐 에 대해서, 제대로 정의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윈스턴 처칠도 민주주의는 차선 또는 차악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니깐요.

그런데, 다행히도 민주주의가 뭐냐, 민주정이 뭐냐를 제대로 정의한 사람이 있다면, 에이브리험 링컨일 것입니다. 바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바로, 민주주의고 민주정의 정의라는 것이죠. 대학교 정치학 수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하면, 여기서부터 각론으로 들어갑니다.

뭐 에이브리험 링컨에 대해서,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으로, 에이브리험 링컨을 뽑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