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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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 1 강

말씀 / 요한복음 1:1-18
요절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1. 태초에 무엇이 있었습니까(1a)? 이 말씀은 누구이십니까(1b,2, 요10:30)? 만물을 지으신 이가 누구입니까(3)?

1)태초에
-이는 창세기를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창조 때의 이야기이다.
2)말씀이 계시니라
-창세 때에 말씀이 계셨다.
-여기서 말씀이란 헬라어(곧 고대 그리스어)로 로고스라는 단어를 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로고스'라 일컬은 것이다. 
 : 로고스란 말은 헤라클리투스가 우주를 만들고 정돈하며, 지시하는 원리를 지칭하기 위해 최초로 쓴 말이다.
 : 따라서 로고스는 신적 질서에 참여하는 자로서, 이를 통해 물질 세계와 구분된다.
 : 사도 바울은 세상과 구분되시고, 오히려 창조를 행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이 단어를 번역어로써 사용한 것이다.
-당시 유대교 회당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①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시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영원히 예수님과 같으신 분이시다.
 ②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계신다(1:1,2). 함께는 원어상 '~을 향해'라는 뜻인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③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이시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로 사도 요한은 못박아 말한다. 
    : 여호와의 증인 등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말 앞에 정관사가 없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식의 해석도 있었지만, 콜월의 법칙상 통용되며, 반대자의 표현에 더욱 부합하는 단어가 이미 있다.
    : 사도 요한은 이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한편 세 인격(또는 위격)의 완전한 동일시를 피하기 위해 정관사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분의 무한성과 무한성을 깊이 인정하고 우리 지식이 부분적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영접하고, 예배해야 한다.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만물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것이다: '하나님'과 '말씀'의 독측한 사랑의 교제에서 창조가 시작되었다.
-창세기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심으로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따라서 예수님은 창조의 중재자이시며, 모든 존재의 핵심이자, 통합시키는 원리이다.
-종래의 '로고스'를 비롯하여 많은 우주 탄생론들과는 달리 창세기와 요한복음은 '무'에서의 창조를 얘기한다. 따라서 만물은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존적이다. 

2. 그 안에 무엇이 있었습니까(4)? 이 생명은 왜 사람들의 빛이 됩니까? 빛이 어둠에 비치는데 왜 어둠이 깨닫지 못할까요(5)?

1)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동시에, 창조된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되신다: 창세기 때에 제일 처음 창조된 것은 빛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빛이 되시는 까닭은 사람들이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생명이 없고, 그리고 어둠이 임한다.
-예수님께선 이런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비추이시는 분이시다.
2)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비추이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비추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우리 인간의 어둠, 슬픔, 비극, 죄악조차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제한할 수 없다.

3.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6-8)?

1)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세례 요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저자 사도 요한이 아닌, 세례 요한을 의미한다.
-복음서 저자 모두는 예수님 사역의 첫 출발점으로 세례 요한을 들고 있다. 그는 빛,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이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는 빛 그자체가 아니다. 이는 후에도 나오는 대목이다.

4. 참 빛은 세상에 어떻게 다가오셨습니까(9)? 그가 세상에 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10,11)?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어떤 권세를 주십니까(12)? 이 일은 어떻께 이뤄집니까(13)?

1)참 빛 곧 세상에 와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그 빛을 비추셨는가?: 세상에 오시는 것으로 그 빛을 비추셨다.
-'세상'이란 표현은 부정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반항하는 현 세계를 지칭한다.
-이 표현대로 세상은 예수님을 모르고(10) 심지어 자기 백성(11)조차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비극에 너무나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도 그러하시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대해 무관심한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세상에 오셔서 배격받으셨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이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이시는 빛이시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다시 뵐 때, 우리는 그 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2)영접하는 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들이 있다.
-영접하는 자는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인데, 여기서 믿다(pisteuo eis)는 단순히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삶을 그 분께 바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접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이것이 놀라운 까닭
  ①믿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특정한 사람만이 구원을 누리지 않는다.
  ②우리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
-이 일이 이뤄지는 방식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혈통이나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실제 교회 내에서도 그런 영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하나님 자녀 됨의 은혜는 혈통과 사람의 여타 조건들, 의지에 따라 주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5. 태초에 계신 말씀이 어떻게 되셨습니까(14a)? ‘거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14a)?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봅니까(14b)?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1)말씀이 육신이 되어
-기독교에서 가장 의미심장하고 중대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다.
-이는 곧 예수님은 신성 안에서는 하나님과 하나이면서, 인성 안에서는 우리 인간과 하나라는 것이다.
-육신(sarx)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단어인데, 이는 연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인간의 실존을 드러낸다(사 40.6, 로마서 8:3)
-되다는 표현은 어떤 존재가 그 고유한 특서을 변화시키고 전혀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서 이전과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게 시제상 과거 완료이므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이 되심으로써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다. 
-왜 이렇게 되셔야 하셨는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이 길 말고는 없었다.
 :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이 우리를 구원해야 한다.
 :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우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관계가 회복이 되지만, 우리에게 파탄난 관계를 회복할 의지와 마음이 없다. 또 죄의 대가는 죽음인데 우리가 이 대가를 치러야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이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우리에게 파탄난 관계를 회복할 의지와 마음을 주실 수 있다.
 : 결국 회복할 방법은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이신 분, 곧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성육신이 또 달리 의미하는 것
 : 성육신은 인간 존재의 가치를 긍정한다. 그 많은 연약함과 죄와 타락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 존재를 긍정하신다.
 : 우리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영원하신 이의 안식처가 되셨다.
 : 성육하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을 동등하게 체험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철저하게 공감하실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시다.
-이 예수님을 우리는 경배한다.
2)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막과 성전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계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 우리와 사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모세도 하나님을 이렇게 가깝게 뵙지는 못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이시다. 곧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6.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증언합니까(15)? 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16,17)?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18)?

1)세례 요한의 증거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구원자를 이스라엘에 알린다. 그 역시 자신 뒤에 구원자로 임하시는 예수님이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이를 증거한다.
2)교회가 예수님을 통해 받은 것
-예수님은 충만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누린다.
-은혜 위에 은혜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예수님의 은혜가 연쇄적으로 계속주어진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께서 옛 언약과 율법을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의 온전한 완성을 가져오시고, 스스로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3)예수님은 따라서 하나님을 나타내신다(1:18)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성육하신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나타내신다의 의미: 예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해석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말씀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이 땅에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련의 과정은 결코 무감정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철저한 아버지 하나님의 희생이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심장을 뽑아서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다.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