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2강
2015년 요한복음 제22강
다 이루었다
말씀 / 요한복음 19:1-42 요절 / 요한복음 19:30
1. 군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희롱했습니까(1-3)?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어떻게 나타냈습니까(4,5)?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요구했습니까(6,7)?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1-3)”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한다. 당대 채찍질은 3 종류가 있었는데, 죄의 경중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른 것이었다. 여기서는 어떤 채찍질을 가했는지 알 수 없으나 최소 중간 이상은 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 -또한 가시나무로 관을 엮었는데, 이것은 가시나무 관목이나 대추야자 밑둥 가시 있는 부분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이럴 경우 그 가시 길이는 30Cm에 이를 수 있었다. 이 관의 형상은 당대 로마 황제의 관에서 나온 것. 이 가시관은 머리를 찔러 엄청난 고통과 출혈을 가져온다. -예수님께 자색옷을 입혔는데, 이것은 앞서의 가시관과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 자색옷은 홍포로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로마 군인 상위 계급이나 황제가 입는 옷이기도 하다. 당시 연극이나 서커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으로 조롱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조롱하고 멸시하기 위해 취해진 일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무력하게 조롱받으시고, 무참히 짓밟히시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이어서 이야기 하겠지만, 빌라도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모든 질고와 고통을 같이 체험하실 뿐만 아니라, 감내하시는, 그러나 완전히 우리와 같이 온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을 보기도 한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4,5)”
-빌라도는 가시관에 찔려 출혈로 얼굴이 엉망이 되고, 자색 옷을 입고, 처참한 몰골을 하신 예수님을 끌고 유대 군중 앞에 내세운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재차 선언한다. 빌라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런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동정심을 얻어, 예수님이 풀려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그는 이를 통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달성되지도 않을 뿐더러, 이런 얕은 수작을 부려야 하는 빌라도 자신의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6,7)”
-빌라도의 이런 시도는 대제사장들과 아랫 사람들, 그리고 이에 동조한 유대인들의 반발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다. -대제사장들 이하 모든 유대인이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고, 그것만이 그들을 만족 시킬 수 있다. 그들에게 타협이란 불가능하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다시 항의를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거론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이유로 당연히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빌라도는 유대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등의 압력을 받는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후원자를 잃은 정치적 취약성과 엮여, 그의 마음 속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그는 도망칠 수도 없다.
2. 빌라도는 자신에게 어떤 권한이 있다고 말했습니까(8-10)? 그러나 그의 권한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11)? 결국 그는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까(12-16)?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8-10)”
-관정 안에 들어온 빌라도는 두려워한다. 그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서 신적 아바타라는 미신, 아니면 자신의 약해진 정치적 입지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너는 어디서부터냐” 이것은 재판관할권적인 질문일수도 있다. 행정구역상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오한 질문일수도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진정 어디서 온 어떤 사람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빌라도는 그 대답을 얻고자 예수님을 협박한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런 강한 권력을 가진 그가 극심한 정치적 압력 아래 있어 스스로의 결정도 못내리는 상황에, 이것만큼 공허한 위협이 있을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11)”
-이에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이는 빌라도의 자신이 가진 권한, 책임 같은 것은 빌라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가장 속박되고 약한 모습이시나, 십자가의 길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고, 예수님은 이를 주도적으로 취하시는 한편으로, 이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신다. -반면, 빌라도는 이 예수님을 강제하고, 십자가에 보낼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진 척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반대를 이겨내고 결정하지를 못하고 있다.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 무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를 못 박게 한 결정을 내릴 빌라도에게 죄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죄가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에게 있음을, 예수님은 지적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죽이고자, 지극히 큰 악의로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 붙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었음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대인의 왕이신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다 못해 십자가형에 처해 죽이려고 들고 있다. 그 죄가 결코 작겠는가?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12-16)”
-빌라도는 예수님의 풀어주고자 하는 최후의 시도를 한다. 그는 예수님의 증언과 다른 복음서의 일들, 그리고 양심의 가책 등으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유대인들의 요구에 굴복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하는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다,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 이것은 지독한 이율배반이다. 그것은 당대 유대인들의 기도문들은 하나님 외에 왕이 없다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이 말에 굴복한다. 유대인들의 반란 가능성, 그들의 종교 등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추궁, 또 유대인의 왕을 풀어줬다는 것으로 황제에게 들어갈 유대인의 고발 가능성, 자신의 후원자를 잃고 황제의 눈 밖에 날 수 있었던 상황, 이런 것 앞에 빌라도는 굴복한다. 그가 으름장을 놓았던 것과는 상반되게, 그는 철저히 상황 앞에 굴복한 것이다.
3. 예수님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17,18)? 예수님의 죄 패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습니까(19-22)? 십자가 밑에서 군인들은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23-25)? 예수님은 어머니를 누구에게 부탁하셨습니까(25-2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17,18)”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위해 군인들에게 맡겨지셨다. 십자가 처형 전에 가혹한 채찍질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채찍 끝에는 금속이나 뼛조각이 달려 있어, 살점이 찢기고 내장이 드러나기고 했다. 여기서 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또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 가로막대를 짊어지시고 형장으로 가셨는데(세로 막대는 형장에 있었다),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구레네인 시몬은 생략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십자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장은 해골, 히브리어로는 골고다, 라틴어로는 갈보리라는 예루살렘 밖의 언덕이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손목이나 손이 가로 막대에 못박히고, 세로 기둥에 발이 못 박히게 된다. -십자가형은 사형수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질식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만약에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손과 발에서 끔찍한 고통이 왔다. 근대 사형제도가 빠른 죽음으로 사형의 야만성을 줄이려고 하는 것과는 상반된 면이 있다. 유대 지역 외에서는 경고의 의미로 기괴한 모습으로 까마귀나 독수리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이 형벌은 노예, 강도, 반란자, 전쟁 포로와 같은 자들에게 주어진 중형이었고, 유대인들은 율법상 나무에 매달린 자라 해서,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로 십자가형을 바라보았고, 로마의 키케로는 잔인하고 역겨운 형벌이라 비판하였다. 또 로마 시민은 이런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예수님은 다른 두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셨다. 이것은 시편 22:16절 말씀(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을 응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마태, 마가복음에서 다른 두 죄수는 강도라 불리는데, 이들도 바라바와 같은 반란자일 수 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19-22)”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패를 써서 붙였다. 그것에 쓰인 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의 죄목을 써서,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패에 쓰인 것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반역죄로 모는 것이자, 빌라도의 앙갚음이 섞인 것이나, 보다 깊이는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 패는 히브리, 로마, 헬라 말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로마어는 통치 언어, 헬라어는 이방인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로마제국의 국제어였다. 이것은 전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포라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에 항의하나, 빌라도는 이를 거절한다. 빌라도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 수 있겠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23,24)”
-군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예수님의 옷을 나누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우리도 예수님 앞에 이렇게 무정한 사람일 수 있다. 고통 받는 자 앞에서 이런 사람일 수 있다. -예수님의 속옷은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얻고자 제비 뽑고자 하는데, 사도 요한은 이 일도 성경에 이미 기록되었다고 지적한다. 시편 22:18 “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이 비참하고 무력하게 죽으시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미 계획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뜻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예수님은 무력한, 불의한 재판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이로써 지금 십자가에 매달리고 계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 마리아, 그의 이모(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이 있었다. 다른 공관복음서와 비교해볼 때, 아마 멀리서 보다가 군병들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자 다가왔을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의탁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다른 형제들이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십계명 제5계명 말씀에 따라 자신의 남은 부모를 봉양하는 의무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도 요한에게 의탁한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이에 순종한다.
4. 예수님은 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까(28,29)?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30)? 이 말씀은 십자가의 죽으심이 갖는 의미가 어떠함을 가르쳐 줍니까?(요1:29, 히10:10-12)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28, 29)”
-십자가에서 천천히 죽어가시면서, 다른 생각과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다는 깨닫고 최후의 일, 곧 성경을 응하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서 죽음이 코앞인데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할만한 그런 상황에서도 매우 능동적이시다. -목 마르다 하시는데, 이는 시편 69:21절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셨사오니.” -목 마르다는 말씀에 사람들이 주는 포도주는 초로 비유되는 신 포도주다. 다른 복음서에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이 거절하신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마취제 역할을 한 것이고, 이 신 포도주는 생명을 연장시키며, 고통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포도주는 우슬초 줄기에 매여 예수님의 입에 닿았다. 우슬초는 유월절에 문설주에 피뿌리는 의식(출애굽기 12:22)에 사용되었으며, 그 외 피뿌림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속죄와 정결의 죽으심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30)”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브리서 10:10-12)”
-예수님은 이후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죽으셨다. 이것은 예수님께 주어진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으시는 그 일을, 십자가라는 상식상 인생의 최저점에서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지는 놀라운 신비이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충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 이스라엘은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야했지만, 이 제사 자체는 인류를 속죄하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이를 믿음으로 이 한번의 영원한 제사로, 그를 믿는 이마다 모든 죄가 용서받게 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충분하다.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만으로, 그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이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 다른 구원은 없다.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5. 예수님의 죽으심의 과정에서 어떤 말씀이 성취되었습니까(31-37)?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각각 무엇을 했습니까(38,39)? 예수님은 어떻게 장사되셨습니까(40-42)?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31-37)”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은 유월절 주간 안식일 전날로서, 그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당시 시간 관념상 저녁이 되면 유월절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당대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에 십자가 위에 시신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고, 또 신명기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으니라.” 말씀대로 하여야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즉사하게 하여, 시체를 치우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않았고, 확인 차 긴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 아마 심장이 관통된 것으로 보이는데,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는 심장에 물이 찬다는 얘기가 있다. 피와 물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이 일조차 성경을 응하게 하시는 것이라 설명한다. 시편 34: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는 말씀을 그는 인용한다. 또 이것은 출애굽기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에 나오는 유월절 규례와도 엮여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유월절에 죽으심과 상응한다. 또한 그 찌른 자를 보리라는 말씀은 스가랴서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곡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말씀을 가리킨다. 또 이것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는 말씀과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도 요한은 스스로가 그 목격자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이를 증언하는 목적은 자신의 말하는 것이 참이며, 또 이로서 이 복음서를 보는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 모든 모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주시라는 것을 요한복음은 일깨워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얘기이다. 그러나 가장 비참하고도 도무지 좋은 것은 보이지 않는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주이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져 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38,39)”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 사람은 부자이며, 유력한 자로서, 유대 공의회 회원이었다.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은 아니라, 유대인으로 보이며, 전에는 유대인이 두려워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담대해져,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다. 이것은 당대 랍비의 제자들이 행한 일반적인 일이기도 했다. -예수님을 한밤중에 찾았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져왔다. 이는 30kg 쯤 되는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거의 왕에게 하듯 했다.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40-42)”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요셉과 니고데모는 십자가 사형수에게 주어진 장지에 매장하지 않고, 원래는 요셉을 위해 준비한 새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한다. 이것은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이사야 53:9)”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는 다른 무덤의 시신과 십자가 사형수의 시신을 같이 안치하는 것을 온당치 않게 여겼고, 새무덤에 장사되는 것이 덜 거슬리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장례는 급하게 이뤄진 것이었고, 아마 시신을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 것이다. 복음서마다 그런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안식일이라, 급하게 장례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안식일 후 다음날, 곧 오늘날의 주일에, 막달라 마리아 등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