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강
성경&오픈소스
2015 요한복음 제 12 강
말씀 / 요한복음 9:1-41
요절 / 요한복음 9:5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전체적 시점은 초막절, 빛의 축제가 배경이다. 오늘 말씀은 실제로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시는 표적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 나온 세상의 빛으로 예수님에 대한 상반된 사람들의 반응을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빛으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심판의 그림자가 있다.
1.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까(1,2)?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3)? 예수님은 지금이 어떤 때라고 말씀하십니까(4)?
1)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 유대인들과 그 후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 고난을 그 개인의 죄로 인한 것으로 보았다. : 이 소경에 대해서는 유대인들의 생각엔 선천적인 게 분명하므로, 출생 전에 이 소경이 죄를 지었거나, 그 부모가 죄를 지었다고 보았다. -성경은 타락의 결과로 고난과 죄 사이에 일반적인 관련이 생겼다고 말을 하나, 모든 경우에 개별적으로 직접적으로 연관짓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욥기는 고난이 욥의 직접적인 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욥과 친구 사이의 쟁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중적인 종교에서는 고난과 죄 사이를 지나치게 단순화 한다. : 불교와 힌두교는 현재의 고난이 전생의 업보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각은 유대의 일부 랍비, 뉴에이지 운동에서도 나타난다. : 반대의 극단이 치유의 신학에서 부상하는데, 병을 병자의 죄와 관련 있다 보고 치유를 위해서는 무조건 회개를 촉구한다. -예수님은 이런 입장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신다(3). 누구의 죄로 인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신다는 것이다. : 이를 모든 사례에 적용할 수는 없다. 세상의 비극 속에는 설명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 다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어두운 세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2)때가 아직 낮이매 -예수님께서는 일하라 말씀하신다. :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우리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묵묵히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과 생명의 역사를 섬겨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이 예수님이 세상에 계신 동안은 낮이고, 낮이다. 이 낮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시대인 지금에도 이는 적용된다. 우리 생은 밤이 오고 잠자야 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한다.
2. 예수님은 누구십니까(5)?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임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6,7)? 고침 받은 자는 자기 눈이 어떻게 떠졌다고 증언합니까(8-12)?
1)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이는 앞서 요한복음 8장에서도 하신 말씀이시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통해 드러내신다.
2)예수님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는 말씀 후에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령하신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 이전 치유에는 말씀만으로 능히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마술적인 거 같기도 하다. : 하지만 진흙과 아담을 지으신 흙 사이의 연관을 볼 수 있고, 실로암이 보냄을 받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을 발휘하셨다. -이 명령에 맹인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다. 그리고 밝은 눈으로 오게 되었다(7).
3)소경이 있는 그대로를 증언하다. -그가 최초로 증언한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사람이 구걸하던 그 맹인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8,9) -소경은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내가 그라."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소경의 대답: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이를 보면 소경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저 그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을 뿐, 눈이 멀었기에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 바리새인들 중에 어떤 분쟁이 있었습니까(13-16)? 맹인 되었던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까(17)? 그의 부모는 왜 아들이 눈을 뜨게 된 과정을 말하지 않았습니까(18-23)?
1)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 놀라운 일에 대해 맹인이었던 사람을 바리새인에게 데리고 간다. 이 놀라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필 이때는 안식일이었고, 이건 바리새인과 유대교에겐 큰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자초지종을 묻는다. -소경의 대답: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바리새인들 사이엔 분쟁이 생겼다(16). : 소경이 고침을 받은 날은 안식일이었고, 전통적 규례상, 안식일에 고치는 행위는 생명에 위협이 될 때에 한정되었고, 반죽하는 행위는 특별히 금했고, 엄격한 교사는 눈에 대한 연고사용을 금하였다. : 안식일을 준행하지 않는다 vs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냐 : 표적이 구약성경에도 없던 위대한 일인데, 예수님이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는 것은 명백해보이니 바리새인들 사이엔 분쟁이 생긴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규정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재검토하거나, 더 계시하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화석화되었다.
2)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다. -바리새인들: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맹인이었던 자의 고백: 선지자니이다. -맹인이었던 자는 깊이 이 일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선지자라 고백한다.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찬성하는 쪽에 선다.
3)부모는 이 문제를 회피하다. -바리새인들은 이 일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상식을 부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엔 맹인이었던 자의 부모를 불러온다. -부모들의 답변: 선천적 맹인인 것과 보게 된 것을 증언하지만, 출교 당할까 두려워서 대답을 회피하고(22), 나은 자기 아들에게 떠넘긴다(23). -솔직히 이건 배은망덕한 일 아닐까? 자기 아들이 온전케 된 것을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일에 기뻐하지 않고 감사도 않다는 게 좀 답답한 일이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38년 된 병자 사건에서도 드러난 대목이다.
4. 유대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무엇을 강요했습니까(24)? 그러나 그의 증언이 무엇입니까(25)? 그는 유대인들의 거듭된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합니까(26-33)?
1)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정직과 회개를 요청한 것(수 7:19)과는 다른 증언 강요 행위다.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24) -즉, 그 기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율법을 범하고 평범한 죄인을 깨끗이 털어놓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2)맹인이었던 자의 증언 -그가 죄인인지는 모르겠고,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왜 되풀이 말하게 하냐?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3)바리새인들의 분노 -욕을 하며 말한다.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그들의 헌신 대상은 전통과 전통의 핵심인 모세 율법이다. 확실히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율법에 대한 사고 방식과 율법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율법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언약적 틀에서 봐야 한다 : 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라로라"가 선행되어야 한다. : 즉, 율법이란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준수해야 하는 '은혜의 법'. 그러나 그들은 결국 공로의 종교,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의 종교에 머물러 있었다. : 율법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없으면, 율법주의로 퇴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율법의 외적인 것에 매달리고 있다면 이런 자들이 아닌가 되물어봐야 한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은혜를 재발견하도록, 이 예수님 같은 일들을 통해 우리를 가끔은 넘어뜨리기도 하신다. 4)맹인이었던 자는 끝까지 자기 입장을 고수하다. -맹인은 오히려 그들에게 한 마디 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다. : 예수님이 내 눈을 뜨게 했는데, 당신은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 하나님은 죄인의 말이 아니라, 경건한 자,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을 들으시니깐,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신 것이 분명하다. :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들은 적이 없다. :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바리새인들이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 심지어 그 분을 죄인이라 모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냐 반문 하는 것이다.
5. 그 사람은 어떤 어려움에 처했습니까(34)? 이런 그를 예수님은 어떻게 도우셨으며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35-38)? 바리새인들은 어떤 점에서 맹인입니까(39-41)?
1)맹인이었던 자가 쫓겨나다 -그는 그의 눈 멂이 나았음에도 축복받지 못하고, 오히려 죄에서 나왔다는 매도를 받고 쫓겨난다.
2)예수님이 그를 도우시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인자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심판을 행하실 분이자, 메시아의 다른 이름. -예수님은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님을 더욱 잘 알 수 있도록 돕고자 하신다. 즉, 예수님을 주로 믿어 구원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맹인이었던 그는 이미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그를 낫게 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신다. -맹인이었던 자는 "내가 믿나이다"하며 절하고 예수님을 예배한다.
3)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는 맹인이 되게 -예수님은 구원하러 오신 것 아니신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신건가?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원과 심판이 있게 되었다. : 환영하는 사람은 해방되어 빛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깊은 어둠에 들어가 맹인이 될 수밖에 없다(39). -바리새인들의 반응: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님의 대답: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지만,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 자신이 어둠인 세상의 일부요, 하나님과 그 구원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된 자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다면 죄가 없다. : 하지만, 율법을 좀 많이 안다고 해서,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냥 영적 맹인으로 어둠과 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이 죄에 대해서 예수님은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응답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구원이요, 그 반대는 심판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주이시요, 심판주이시다. 이미 구원도, 심판도 시작된 것이다.
4)결론 -날 때부터 소경은 결국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인간 상태의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이다. -그러나 이 날 때부터의 소경은 세상의 빛으로 돌아서는 것, 곧 구원의 감동적인 본이 된다. : 예수라는 사람(11)->선지자(17)->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30)->그 분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33)->주여 내가 믿나이다(38). : 믿음은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헌신하는 순간까지의 그 분을 향한 여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눈먼 눈이 뜨게 된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반대에 대한 예시다. :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주위 사람에게 질책을 받을 수도, 갈등도 일으킬 수 있기에, 우리는 이를 각오해야 한다. : 다만 이 소경처럼 단순하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동시에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게 될 분기를 나타낸다. :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요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 그러나 자기에게 빛이 있다 거부하는 사람이 있고, 이런 사람들은 결국 심판에 들 수밖에 없다. : 반대로 솔직하게 스스로의 맹인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는 이에겐 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