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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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14강

본문; 요한복음 11:1 - 44
요절; 요한복음 11:25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1. ‘어떤 병자’는 누구입니까(1-2)? 그 누이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도움을 청합니까(3)? 이들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떠합니까(2,3,5)?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4)?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각이 어떠합니까?

1)어떤 병자
-예수님께서는 수전절 때, 유대인들과 충돌하셨고, 예루살렘을 떠나 세례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신 상황
-그런데 예수님께 인편으로 연락이 왔다.
-곧,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 가족은 예수님과 특별히 친한 이들이었다. 여기서 마리아는 다른 여러 마리아와 구별되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다. 
-그들의 연락 내용: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했고, 예수님께서 어떻게든 도와주실 것이라 확신함으로 이런 서찰을 보내었다.
2)예수님의 말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
-여기서 예수님이 이 병의 위중함을 간과하신 것이 아니다. 큰 병이었다. 실제 나사로는 죽었다.
-그러나 이 병, 나아가 사망의 권세가 승리하는 것이 최종적인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히려 이 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낫게 하실 때와 유사하다. 
-시련, 고통, 슬픔에 대해 우리는 빠르게 이것들이 끝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때로는 지속되는 시련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믿음으로 드릴 때, 이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자. 우리가 온전히 다 이해하실 수 없는 하나님은, 어떤 선한 것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고통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2. 예수님은 왜 그곳에 이틀을 더 계십니까(5-6)? 나사로의 누이들이 생각한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7-8)?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난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9-10)?

1)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뒤의 말씀을 볼 때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께서는 중병 걸린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틀 더 유하셨다. 
: 예수님께서 머무신 곳이 어디인지는 설이 분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르다, 마리아의 요청에 의도적으로 응답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실현되는 것이 늦어지는 게 있다: 병, 사랑하는 이의 구원, 또는 취업 등등 다양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다. 우리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아시는 분이시다. 반면 우리의 시각은 한정적이고 무엇인가 왜곡되어 있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늦어보이시는 그 때가 적당한 때로 보신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 일을 우리가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본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2)유대로 다시 가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 모두를 아셨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가고자 하신다.
-제자들은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다가올 생명의 위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죽음에 두려워 하고 있다.
-제자들의 심령은 밤이고, 빛이 없었고 실족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지금이 낮임을 상기 시켜 주시고, 이 예수님을 믿을 때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 상기시켜 주신다.


3.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어떻게 보십니까(11-14)? 예수님은 나사로 곁에 있지 않았던 것을 왜 기뻐하십니까(15)? 늘 기회를 따라 제자들을 훈련하고 도와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시오. 그러나 현재 그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16)?

1)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잠이라 보신다(11,13). 이는 구약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다. 열왕기 등에도 이렇게 기록된 구절이 있다.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였지만, 실제 예수님 보시기에 죽음은 잠과 같다. 이것은 야이로의 딸에 대해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유사하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 죽음은 정복되고, 자고 깨는 것 같이, 죽은 자도 잠자는 자처럼 깨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나 태연해 보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사로가 잠자고 그 중병에서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12). 
2)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니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음을 밝히 말씀하신다(14)
-오히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기뻐하시는데, 이는 그 가족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나, 그 가족과 또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의 실현을 보기 위해서는 그에게로 가야 한다.
-또 예수님은 지금 죽은 나사로를 시체로 보지 않으시고, 한 인간으로 보고 계신다. 현재적 관점에서도 놀라운 시각이다.
-때로 우리 삶에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신다. 그래서 고난도 주시기도 하신다.
-중요한 것은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그 믿음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3)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아직 제자들은 부활의 믿음을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위험천만하고 죽음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으나 그들은 최소한 의리가 있었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란 이런 것이다.


4.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 지금 나사로는 어떤 상태는 어떠했고, 그 집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17-19)?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며 무슨 말을 했습니까(20-22)? 이렇게 말하는 마르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23-24)?

1)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일단 우리나라에서도 사흘 후면 발인이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면 다 끝난 상황이다.
-또 유대인들의 생각에는 사망한 영혼은 사흘 동안 죽은 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쓴다고 생각했다. 여타 중동 지역 종교도 그러했다.
-어찌 되었건 상황은 이제 나사로가 확실히 죽은 상황이었다.비슷한 상황이 예수님의 죽으심 때에도 일어난다.
2)많은 유대인이 위문하러 왔다.
-유대의 풍속이기도 했지만, 나사로와 그 가족의 인간 관계가 넓고, 또 유복했음을 보여준다(이후 나사로의 부활 잔치에서도 보인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리에 예수님을 맞으러 왔고, 마리아는 집에서 기다렸다.
-두 자매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 있다.
3)마르다의 원망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예수님을 원망하는 듯 하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계셨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인사치레인지, 나름 믿음의 표현인지는 모르나, 뭔가 기대함이 있었다. 
4)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즉시 나사로가 부활하리라 단언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
5)마르다는 믿지 못하다
-마지막 날의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줄을: 당시 사두개인들을 제외한 유대인들 대부분의 소망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것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부활과 생명과 구원의 주께서 눈 앞에 계시다는 것, 능히 지금도 부활케 하실 수 있으신 분이다는 것을 그녀는 믿지 않고 있다.


5.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심을 선포하셨습니까(25a)?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25b-26)?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부활과 생명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6b)? 마르다는 어떻게 고백합니까(27)?

1)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이 일에 대해 말씀하신 바 있었다. 요한복음 5:19~29절 내용이 그러하다. 여러 이적들을 통해 드러내셨다.
-이제는 우리에게 부활이자 생명 그 자체이심을 말씀하신다. 곧 부활과 불멸의 생명의 주께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이 예수님을 믿을 것, 곧 부활과 영생의 주이심을 믿으라 말씀하신다. 마르다의 소망을 철저하게 새롭게 구성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부활의 생명을 누리려면, 결국은 이 주이심을 믿어야 한다.
2)마르다의 고백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마르다는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직도 이후 일을 보면 마르다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부족하지만 마르다의 믿음을 더욱 진전케 하였다. 


6. 예수님을 맞으러 나간 마리아는 예수님께 무슨 말을 했습니까(32)? 울고 있는 마리아와 무리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33-38)?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39,40)? 예수님은 나사로를 어떻게 살리셨습니까(41-44)?

1)마리아와 조문하러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나오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통해 마리아를 부르신다. 조문하러 온 유대인들과 같이 따른다.
-마리아의 반응: 엎드리며 울며 마르다가 한 원망 섞인 말을 그대로 한다. 온 유대인들도 같이 그에 동조하며 운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좀 더 솔직했던 것 같다.
2)예수님의 반응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33)...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
-예수님은 우리의 심정과 멀리 있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인간이시고, 우리의 고뇌에 참여하시고, 또 나사로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시는 지를 이 말씀은 보여준다.
-예수님의 비통(33,38)
: 슬픔과 동시에 예수님은 깊은 진노를 느끼신다. 원어로 보면 엠브리마오마이라는 동사를 쓰는데, 사람에게 쓰일 때는 분노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 마리아와 조문객들의 반응에 분노하신 걸까? 그렇다기 보다, 죽음의 악과 부자연함과 광포한 폭정에 분노하신 것이다. 그 죽음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에 분노하신 것이다.
: 예수님은 이 죽음을 원수같이 보시고, 이에 진노하시며, 이 원수를 파쾨하려고 하신다.
-사람들은 이 비통을 보고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지극함을 느끼거나, 또는 예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좌절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뒤의 것은 예수님을 명백히 잘못 본 것이다.
3)마르다의 믿음을 다시 촉구하시다.
-예수님은 슬픔 가운데 큰 분노를 품고 무덤 앞에 서신다. 그리고 돌을 옮겨 놓으라 명령하신다.
-마르다는 마주한 현실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믿음의 한계를 드러낸다: 죽은 지가 나흘이고 벌써 냄새도 납니다. 영혼도 떠나고 육체도 썩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꾸짖으시고 믿음을 주신다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은 약속을 상기시켜 주시고, 믿도록 촉구하신다. 
: 이 영광은 세상 가운데 계시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절정을 보여주신다. 7번째 표적은 이처럼 점점 더 구체적이고, 진정하게 구체화된 하나님의 영광이다.
4)기도하시는 예수님
-아버지여: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라 부르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성부-성자의 놀라운 사랑과 교감이 또한 우리의 기도에도 가능하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우리의 기도는 항상 열납된다.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우리도 다른 이들 위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기도도 우리의 믿음을 위해 하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결국 기도의 열매는 믿음으로 나타난다.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 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 안에서 우리의 기도는 헛되지 않는다.
5)나사로야 나오라!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나사로가 살아서 그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선한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불러 양을 인도하는 것처럼, 그 음성을 듣고 정말로 죽은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왔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완전히 죽음이 이겼을 때, 생명의 주께서 그 권세를 이기시고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것이다.

6)이 표적의 의미
-하나님의 사랑은 때론 이해가 힘들 때가 있다: 일부러 죽도록 두신 일이 잘 영접이 안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온전한 거룩과 구원을 위해, 때로는 환란과 고통, 슬픔도 사용하신다.
-예수님의 인성을 풍부히 드러낸다: 예수님은 무심한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모든 감정을 공유하시는 완전한 인간이신 구세주이시다. 우리의 고난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의 권세자이시다
: 나사로의 죽음과 부패 과정도 예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도 쇠락하고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러나 이 육체는 결국 온전히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다
: 죽음은 보편적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임할 막연한 부활 대신 새로운 확신을 갖는다. 
: 예수님의 부활까지 생각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삶을 확신할 수 있으며, 그것도 지금 경험할 수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신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믿음의 연합으로 가능하다.
-우리가 이 부활을 경험하려면, 예수님의 초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초대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