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의 때 사사가 된 입다

Sharing is caring!

환란의 때 사사가 된 입다

말씀 / 사사기 10:6-12:15
요절 / 사사기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사사 입다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있었지만, 반대로 뿌리깊은 불신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사 입다를 통해, 하나님을 향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입다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사사기의 뻔한 레퍼토리 같지만, 그 당시는 정도가 더 심해서, 무려 바알과 아스다롯 뿐만 아니라, 주위 5개 종족의 신들까지도 우상숭배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 진노하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친히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데, 그 백성들이 배반하다 못해, 이제는 온갖 잡신들을 다 섬기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암몬 자손을 쓰셔서, 이스라엘을 18년간 고통받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을 고백하고,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이 기드온 때보다 더 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너희들을 구원하지 않을터이니, 너희들이 섬기던 그 신들이 구원하도록 해보라 하시며 이스라엘을 외면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였다 회개하며,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 주시옵소서”하며 거듭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그만두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는 하셔야 했지만, 동시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곤고에 깊이 근심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암몬 자손들은 길르앗으로 몰려가 진을 치고 전쟁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길르앗의 상황은 매우 위급하였고, 일단 길르앗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싸울 태세를 갖췄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앞에서 앞장 서서 싸울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은 길르앗 출신으로, 큰 용사인 입다를 찾아가서 그들의 군대 지휘관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그들이 전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는 세우시는 이입니다. 그런데 이 사사를 인간의 뜻으로 세운다는 것부터, 이스라엘의 변질된 모습을 옅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입다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우려는 이유는 오직 그가 싸움을 잘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입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큰 용사로 싸움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길르앗으로, 길르앗이란 도시의 지도자였지만,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 그는 비천한 대우를 받아, 결국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추방된 그는 돕이라는 척박한 동네로 들어갔고 주위를 약탈하는 도적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머리가 좋아서, 협상을 할 때 밀리지가 않았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군대 지휘관이 될 것을 권유 받았을 때, 그는 협상을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사사까지 선출된 것입니다. 또 이후 암몬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에 앞서서, 암몬 왕과 협상을 통해, 암몬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협상은 결렬 되었지만, 그는 역사적 근거와 실질적 영유권의 법적 근거를 대어, 협상 명분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머리도 좋았지만, 그만한 노력과 공부를 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인생 역전의 야망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은, 준비된 지도자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비록 사람들이 선출한 지도자였지만, 미스바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 싸움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사로 선출되었을 때도, 먼저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사 입다는 아로엘과 민닛에 이르는 20개 성을 치고, 아벨 그라밈에 이르기까지 암몬 자손을 철저하게 패배에 빠뜨리고,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암몬 자손과의 전투를 앞두고, 치명적인 잘못된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승리와 평안한 귀환을 허락하시면,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해서는 안 될 서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아브라함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이는 근거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또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으시고, 대신 양 제물을 대신 주셨습니다. 이는 이방민족들처럼,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또 인간 제물로 조종될 분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그릇된 서원은 하나님과도 협상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결코 사람에게 조종을 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의 그릇된 서원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그는 결국 자기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번제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령 해석에 따라, 그가 그 외동딸을 번제물로 드리지 않았더라도, 그 외동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했고, 그는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였으나, 그의 사사로서의 삶은 고작 6년간이었습니다. 이런 영광을 얻고자 그의 자손은 다 끊어진 셈입니다. 구약에서, 자식이 그 사람의 열매로 간주되는 것을 볼 때, 그는 너무나 끔찍한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또한 그는 매우 잔인하였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자손의 거만한 도전에 피의 보복으로 답했습니다. 물론 에브라임 자손은 매우 교만하였습니다. 징계를 받아야 할 지라도, 그 도가 심했습니다. 결국 입다의 잔인성으로 말미암아, 4만 2천명이나 죽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하던 에브라임 지파는 힘을 잃고, 이스라엘의 국방력도 매우 취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입다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 모두에 많은 결함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사사 입다조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선한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일하신다는 것을 알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였습니다. 사사 입다를 세우는 첫 시작부터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매우 경시해서 동족 살인조차 서슴없이 행하는 악행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모임을 나가서, 양식 말씀을 듣는데, 마침 요절 말씀이 에베소서 1:17절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이 말씀과 함께, 사사 입다를 생각하니. 정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안다는 것,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 베푸시는 은혜와 주권에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제가 요즘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 못합니다. 대학원 졸업 문제, 취업 문제도 생각하면 할수록 제 미래는 불투명하고 답답한 일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제가 사사 입다와 같이 망령되게 행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신뢰하며 겸손히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구원과 영적 성장, 그리고 이 땅에서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과 협상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습과 특정한 조건을 보시고, 저를 구원하신 것도 아니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굳이 서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쟁취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량 없는 구원과 영광을 베푸시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이 약속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행하시기도 전에, 미리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약속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다만 예수님 안에 늘 거하며, 이를 믿고, 모든 일에 도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댓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