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50:1~6(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까닭은 그 분이 모든 천하만물을 사랑 가운데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그리고 그 위대하심에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모든 악기와 모든 호흡을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찬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주위 상황을 보면, 나라가 어렵고, 제 경제적 상황과 미래는 정말로 어둡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분 안에 거하며, 기억하고, 찬양할 것은 의무를 넘어서, 주님의 사랑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자이며, 죄와 사망에 쉽게 넘어지는 죄인이지만,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이 죄인을 기억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사랑하는 주님, 찬양받으소서. 영광 받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환란의 때 사사가 된 입다

환란의 때 사사가 된 입다

말씀 / 사사기 10:6-12:15
요절 / 사사기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사사 입다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있었지만, 반대로 뿌리깊은 불신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사 입다를 통해, 하나님을 향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입다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사사기의 뻔한 레퍼토리 같지만, 그 당시는 정도가 더 심해서, 무려 바알과 아스다롯 뿐만 아니라, 주위 5개 종족의 신들까지도 우상숭배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 진노하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친히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데, 그 백성들이 배반하다 못해, 이제는 온갖 잡신들을 다 섬기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암몬 자손을 쓰셔서, 이스라엘을 18년간 고통받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을 고백하고,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이 기드온 때보다 더 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너희들을 구원하지 않을터이니, 너희들이 섬기던 그 신들이 구원하도록 해보라 하시며 이스라엘을 외면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였다 회개하며,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 주시옵소서”하며 거듭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그만두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는 하셔야 했지만, 동시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곤고에 깊이 근심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암몬 자손들은 길르앗으로 몰려가 진을 치고 전쟁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길르앗의 상황은 매우 위급하였고, 일단 길르앗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싸울 태세를 갖췄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앞에서 앞장 서서 싸울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은 길르앗 출신으로, 큰 용사인 입다를 찾아가서 그들의 군대 지휘관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그들이 전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는 세우시는 이입니다. 그런데 이 사사를 인간의 뜻으로 세운다는 것부터, 이스라엘의 변질된 모습을 옅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입다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우려는 이유는 오직 그가 싸움을 잘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입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큰 용사로 싸움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길르앗으로, 길르앗이란 도시의 지도자였지만,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 그는 비천한 대우를 받아, 결국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추방된 그는 돕이라는 척박한 동네로 들어갔고 주위를 약탈하는 도적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머리가 좋아서, 협상을 할 때 밀리지가 않았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군대 지휘관이 될 것을 권유 받았을 때, 그는 협상을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사사까지 선출된 것입니다. 또 이후 암몬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에 앞서서, 암몬 왕과 협상을 통해, 암몬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협상은 결렬 되었지만, 그는 역사적 근거와 실질적 영유권의 법적 근거를 대어, 협상 명분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머리도 좋았지만, 그만한 노력과 공부를 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인생 역전의 야망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은, 준비된 지도자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비록 사람들이 선출한 지도자였지만, 미스바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 싸움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사로 선출되었을 때도, 먼저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사 입다는 아로엘과 민닛에 이르는 20개 성을 치고, 아벨 그라밈에 이르기까지 암몬 자손을 철저하게 패배에 빠뜨리고,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암몬 자손과의 전투를 앞두고, 치명적인 잘못된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승리와 평안한 귀환을 허락하시면,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해서는 안 될 서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아브라함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이는 근거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또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으시고, 대신 양 제물을 대신 주셨습니다. 이는 이방민족들처럼,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또 인간 제물로 조종될 분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그릇된 서원은 하나님과도 협상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결코 사람에게 조종을 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의 그릇된 서원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그는 결국 자기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번제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령 해석에 따라, 그가 그 외동딸을 번제물로 드리지 않았더라도, 그 외동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했고, 그는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였으나, 그의 사사로서의 삶은 고작 6년간이었습니다. 이런 영광을 얻고자 그의 자손은 다 끊어진 셈입니다. 구약에서, 자식이 그 사람의 열매로 간주되는 것을 볼 때, 그는 너무나 끔찍한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또한 그는 매우 잔인하였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자손의 거만한 도전에 피의 보복으로 답했습니다. 물론 에브라임 자손은 매우 교만하였습니다. 징계를 받아야 할 지라도, 그 도가 심했습니다. 결국 입다의 잔인성으로 말미암아, 4만 2천명이나 죽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하던 에브라임 지파는 힘을 잃고, 이스라엘의 국방력도 매우 취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입다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 모두에 많은 결함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사사 입다조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선한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일하신다는 것을 알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였습니다. 사사 입다를 세우는 첫 시작부터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매우 경시해서 동족 살인조차 서슴없이 행하는 악행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모임을 나가서, 양식 말씀을 듣는데, 마침 요절 말씀이 에베소서 1:17절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이 말씀과 함께, 사사 입다를 생각하니. 정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안다는 것,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 베푸시는 은혜와 주권에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제가 요즘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 못합니다. 대학원 졸업 문제, 취업 문제도 생각하면 할수록 제 미래는 불투명하고 답답한 일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제가 사사 입다와 같이 망령되게 행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신뢰하며 겸손히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구원과 영적 성장, 그리고 이 땅에서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과 협상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습과 특정한 조건을 보시고, 저를 구원하신 것도 아니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굳이 서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쟁취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량 없는 구원과 영광을 베푸시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이 약속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행하시기도 전에, 미리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약속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다만 예수님 안에 늘 거하며, 이를 믿고, 모든 일에 도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큰 용사여!

2016년 여름방학 사사기 제 5강

큰 용사여!

▣ 말씀 / 사사기 6:1-32
▣ 요절 / 사사기 6:12

사사 기드온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이스라엘은 사사기의 악순환을 계속 밟아가고 있었습니다. 본문 1절은 당시 이스라엘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 내내 우상숭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미디안 족속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겨주심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징계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타고난 약탈가였는데, 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아말렉과 동방사람들과 연합해서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에, 침입해 와서는 토지 소산을 멸하고, 이스라엘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않고, 모든 가축을 싹쓸이해갔습니다. 파종한 밭에 짐승들을 끌고와서 모두 먹어치웠는데,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 버티어도,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불과 7년만에 이스라엘은 궁핍함에 너무 시달렸고, 이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먼저는 그들의 잘못을 선지자를 보내셔서 꾸짖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일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일을 상기시켜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10).” 이처럼 이스라엘의 문제는 가나안 땅의 토속신을 두려워하고 토속신앙과 타협하며, 우상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해지고, 이방민족에게 시달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지자를 먼저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였기에, 이렇게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시는 새로운 사사, 기드온은 어떤 사람입니까?

무엇보다 그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그는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밀은 타작할 때, 바람이 잘 부는 넓은 마당에서 해야 타작이 잘 됩니다. 그런데 그는 바위를 파서 만든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디안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가 두려움이 많았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임하여 던진 메시지는 어떠했습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였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전하였지만, 현 상황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면 솔직히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공연한 말다툼을 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십니다. 기드온을 통해 반드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겁많은 기드온은 더욱 더 당황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15)” 하나님께서는 겁많은 기드온에게 다시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16)”

그래도 기드온은 안심이 안 되었나 봅니다. 기드온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자이신 지 표징으로 확인시켜 달라고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이 가져온 예물을 바위에서 나온 불로 태움으로,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임과, 또 하나님의 약속이 정말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떠나자, 기드온은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으니 죽겠구나 하면서 매우 슬퍼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그를 안심시켜 주십니다. 이처럼 정말 길고 긴 밀당 끝에 겁많은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겁많은 기드온을 쓰실까요? 아마도 이것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를 택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자신만만하던 이를 낮추시고,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모세는 잘 나가던 이집트의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동족에게서 버림받게 하시고, 늘 목숨이 위협받는 도망자로 40년간 살게 하셨습니다. 그는 많이 소심해져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난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뺃팅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도 뛰어난 스승을 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사도의 삶은 고난과 약해짐의 연속이었습니다. 또 내용을 알 수 없는 몸의 가시로 늘 시달려서, 하나님께 이 가시를 빼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사도 바울은 이후로 약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겁많고, 두려운 것,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겁많고 두렵고 약한 것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참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다는 것과 내성적인 성격,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였고, 어느 틈엔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 방패 뒤에 늘 숨어다녔습니다. 하지만, 곧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군 생활은 공부란 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해주었고, 대학 생활 내내 성적도 기복이 심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비난을 받으면 도무지 못 견뎠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드러난 것은 대학원 생활 가운데였습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수업을 듣던 교수님께 공개적으로 질타 받은 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논문도 못 쓰고, 몇 년을 낭비하였습니다. 사람이 두려워서 장막 밖을 돌아다니지 못했고, 돈은 없고 밥을 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기드온처럼, 이스라엘 백성처럼, 굴과 웅덩이와 산성에 숨어사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을 부르신 하나님은 늘 신실하셨습니다. 기나긴 암흑 속에서 두려움 속에 갇혀 살던 저를 끌어낸 것은 믿음으로 도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까마귀로 엘리야를 광야에서 먹이신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는 예레미아 29장 11절 말씀 등, 하나님께서는 두려움 속에 갇혀 있던 죄인을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약한 데서 강하여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어느 날 학교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조교 모집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렇게, 정보보호대학원 조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정보보호 쪽으로 전공을 잡고 대학원 생활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에 얽매이고, 믿음이 적어지는 자신을 보고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저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교 생활 가운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의 정욕과 성공, 그들의 삶을 닮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수업에 대한 열의도 사그라들고, 공부 내용이 너무나 어렵고, 못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또 이전의 삶이 되풀이될 것 같은데 나이만 먹고, 논문은 진도도 잘 나가고, 다니고 있는 학과도 사라질 판이라, 졸업을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저를 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집중해야 함을 배웁니다. 사실, 기드온 때나 지금이나 시대와 상황은 정말 절망적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는 그래도 정보보호 쪽에 자리가 있다고는 말을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불황 속에 이 나이에 직장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지금 배우는 내용도 빡센데, 논문 준비도 두려워지고 그 이후도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겁많고 약한 자를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분명, 이 부르심대로 쓰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를 확증하시는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입니다. 그러니 이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굳이 사사기 공부에 참석하는 이유도 다 이것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두려움과 절망에 갇힌 이 죄인을 깨우고, 또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사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향한 참 예배를 회복하고, 세상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부르심을 다시금 깨닫고, 오늘 기드온처럼 믿음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